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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그넬 E. 베르폰

언젠가의 과거에 우리는 친구였다.

이미 조금은 잊혀진 기억 속에 너는 고양이와 놀고 있다. 과거의 우리는 언제나 '칸나', '이그넬'이라는 사람으로 서로의 눈을 마주 보며 대화를 나눴다. 비록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은 만날 수 없는 곳에 서서 서로에게 대화를 주고받고 있으나, 우리는 서로에게 말을 건네받을 수 있다. 우리는 과거에 알고 지낸 「   」였으니까.

 

"응, 지나간 것에 얽매이면 누구라 해도 잡혀있을테니까. ...그런걸수도. 그러니 너무 오랫동안 잡고 있지 마. 조금씩 흐려지는 것도 또 하나의 기억으로 자리 잡을 수 있어."

 

지금의 나는 그다지 달라진 것이 없다. 조금은 쓸쓸해졌을지 몰라도, 그 속내가 조금 더 어두워졌을지 몰라도 나는 내 속을 감추고 다른 이들에게 손을 내밀고 있으니까. 나의 이득을 위해 내미는 손들은 조금씩 생채기가 나 있기에 그다지 부드러운 손은 아니지만 다른 사람을 잡아줄 수 있는 그 어떤 손보다 단단한 손이랴. 나는 그럴 자격이 없음에도 네게 손을 내민다. 너와 나라는 사람으로. 비록 반대편에 서 있으나, 우리는 과거에 알고 지낸 「   」였으니까.

 

"응. 그거 욕심이 많은거야. 모든 선택에는 책임이 따르고 나아가기 위해서는 무언가의 희생이 필요해. 그게 과거의 기억들이고. 칸나, 조금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나아가기를 바란다면 기억들의 일부를 조금 놓아주는 게 맞다고 생각해."

 

꽤나 단호한 말투로 네게 말했다. 하지만 그게 맞지 않을까. 모든걸 전부 안고 앞으로 나아가기란 쉽지 않아. 그 무게가 어찌나 무거운지 나아가기는커녕 더 아래로 끌어내릴 테니까. 그러니 제발 더 이상은 얽매이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서로의 안에 품어져 있는 포장된 거짓말은 글쎄, 과연 풀어질까.

 

"세상에 없는 것에는 더더욱... 가져서는 안될 욕심이잖아. 그만 포기해. 가슴 아프게 붙잡고 있지 마. 그들은... 그냥 보내줘."

 

끝맺지 않은 말의 끝은 분명 네가 느낀 무언가의 감정일테고, 나는 놓아버리라고 할 것이었다. 너는 도대체 그 간의 삶을 어떤 절망을 안고 여기까지 끌고 왔을까. 어떤 것이라도 전부 이득이 될 만한 것이 아닌데. ...그런 적이 있었냐니, 나는 나 자신까지 버린 사람인데. 질문자체가 모순적이야 칸나.

 

"없지, 단 한 번도."

 

가만히 웃는 네 미소는 예전에 지었던 그런 미소와 닮아서 나는 애써 무시했다. 내가 알아서는 안되는 미소인 것 같아서. 나한테 그 무엇도 바라고, 구하지 말아야할텐데. 나는 그런 것 따위 없는 사람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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