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존재

피자먹고싶은 슈크림빵 2019. 12. 1. 22:51

모든 화약과 총알들이 바람을 빗겨가 이 두꺼운 갑옷들 사이를 파고 들었다. 그 모든 죽음 앞에서 가장 제 몸을 아끼지 않으며 싸우는 사람은 '너'였다. 같은 지위, 같은 나이, 다른 위치.

아무리 지위가 같고, 같은 나이였지만 나는 널 앞서갈 수 없었다. 언제나 그 잘난 네 뒤꽁무니만을 졸졸 따라갔다.

살아돌아온 아테나, 환생한 전쟁의 신. 네 뒤에 따라붙는 칭호들과 그녀가 진정한 신이라며 추종하는 자들을 멸시하고 그저 네게 열등감만을 쌓고 있었다. 혐오스러운 이 모든 감정들이 나를 한눈 팔게 했다. 아니, 애초에 약한 내 탓이었으랴. 작은 화살하나가 몸을 뚫고 지나갔다. 역류하는 핏덩이, 폭발한 지뢰. 비릿함이 금새 입안을 가득 채웠다. 동시에 기억의 한편은 끊겼고, 흐릿하다.

다시 기억이 이어진 곳은 내 방의 침대. 그 곁을 지키고 있던 네 마리카락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심장 얹저리가 아파왔다. 어딘가 막힌 느낌이 들었다. 제 손을 잡고 있던 네 손을 뿌리치고 일어나려 했다. 이불을 걷어냈지만, 그 곳엔 아무것도 없었다. 그 신은, 그 것은 아무 말 않고 서 있을 뿐이었다. 짜증이 밀려왔다. 화가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소리를 지르고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그 곳을 찢어내고, 아파했다. 고통에 몸부림 쳤다. 아니, 또 네게 졌다는 생각에 질렸던것이겠지.

아무 표정없이 날 바라보는 널 경멸하는 눈빛으로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 제가 이리도 아파하는 이유는 그대가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제 생애 마지막 소원입니다. 이번 생에도, 다음 생에도, 저승에서도. 그대의 존재를 알지 못했으면 합니다. "

잔뜩 날이 선 말투. 경멸과 열등감에 휩싸인 내 감정. 이어지는 네 말은 나를 죽였다.

" 난 그대가 누군지 몰라, 그저 내 뒤를 쫓아왔다는 것만 알뿐이지. 자네에게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몰라도, 일단 나는 그 무엇도 아니네. "

내 일생을 쫓아왔던 그 사람은 내 존재만을 알고 있었다. '나'라는 사람의 존재만을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