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락이 닿지 않았을 때.

피자먹고싶은 슈크림빵 2019. 10. 26. 21:32

아침에 눈을 딱 떴을 때, 첫 눈에 들어온 것은 아무것도 새겨지지 않은 새하얀 천장이었다.

발 아래 있는 내 창에서는 밝은 빛이 들어오고 있었지만 천장까지 닿지않는 빛은 새하얀 천장조차 어둡게 만들었다.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오랫동안 내뱉었다. 몸 안에 남아있는 공기들이 다시 새 숨을 들이마실 때 차분히 내려앉은 그 기분이 더욱이 어둡게 만들었지만 무시했다.

 

 시간 따위는 그냥 무시해버린채, 해가 어디에서 지고 있는지도 모르는채 그냥 하루를 시작했다. 울리는 핸드폰을 저 편으로 미뤄두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이 좁은 공간 안에 나 혼자 앉아있음을, 그저 나 혼자 흘러가고 있음을 깨닫고는 몇 분 더 하루를 멈췄다. 혼자서 흘러가는 그 시간들이 너무나도 날 숨막히게 하기에 숨을 쉴 수 없었다.

 이 감정이 공허인지, 외로움인지, 사무치게 휩쓸려와 나를 삼켜버리는 고독인지 나조차 알 수 없도록 이미 먹혔다. 온통 그 감정으로 먹혀버린 사람은 과연 감정을 느끼고 있다는 자각이 있을까. 아픔에서부터 금방이라도 둔감해지는 제 몸뚱아리는 이미 썩어들어간 것조차 모르겠지.

 

하지만 가끔 그 몸뚱아리가 숨쉬지 않는 나의 폐를 때려, 모든 감각들이 되살아나게 할 때 죽어간다.

날 도와줄지도 모르는 사람들의 온기조차 아프게 만들어 살아나버린, 아니 이미 죽어있다고 해야할까. 그를 삼켜버려.

 

연락오는 것조차 힘들고 나를 감당하지 못할 때, 혼자있음을 싫어함에도 다른 이에게 손을 내밀어야함에도 스스로가 손을 뻗는 방법조차 알지 못해서 가라앉아버릴 때. 이게 괜찮은건지 나도 모르겠습니다.

그냥 그 어두운 어둠 속에서 바깥에서 밀려들어오는 작은 빛 한줄에 시선을 고정 시킨 채 눈에서 흘러나오는 눈물을 막지 못하고 그 곳에서 혼자 쏟아냅니다. 그렇게 돌아가신지 어연 9년이 된 우리 할머니 얘기를 꺼낼 때마다 우는 이유는 내가 너무나도 사랑하는, 사랑받았던, 여전히 보고싶은. 지금 이 순간에도 떠올리면 눈물이 나는. 할머니가 너무 보고싶기 때문입니다. 울고 싶을 때 울지못하는 나는 겨우 보고싶은 할머니의 웃는 얼굴 하나만을 떠올리며 겨우 소리없이 크게 울부짖으며 울 뿐이고 또 지쳐 쓰러지며 하루를 마감하겠지요.

 

나는 이 생활들을 반복할 것이고, 또 다시 살아나는 감각에 삼켜지며 죽어갈 것이고, 할머니를 그리워하며 또 울다가 지쳐 잠들겠지요. 하지만 남들에게도 말하며 울 수 없는 까닭은 내가 나약한 존재이기 때문이고, 내 속 안에 썩어버린 내 자신을 들어낼 수 없음이겠지.

 또 이렇게 두서없이 아무런 개연성없이 남들을 배려하지않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그대로를 글에 적어내다보면 괜찮아지겠거니 생각하며 다시 타자를 두드리고 있지만 괜찮아지는게 맞는걸까.